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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전투복장을 한 네 남녀의 모습

 

줄거리

‘더 라스트 듀얼’은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을 배경으로, 세 인물의 시각으로 동일한 사건을 각기 다르게 풀어가는 구조로 전개됩니다. 주인공 장 드 카루주(맷 데이먼)는 전장에서 싸우는 충직한 기사이며, 그의 아내 마르그리트(조디 커머)는 지적이고 당찬 귀부인입니다. 그리고 자크 르 그리(아담 드라이버)는 카루주의 친구이자 후에는 그의 적이 되는 인물로, 지식과 말재주로 귀족 사회에서 입지를 넓혀가는 존재입니다.

영화는 마르그리트가 자크 르 그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발하면서 시작됩니다. 당시 여성의 증언은 법적 효력이 거의 없었고, 남편인 카루주는 아내의 명예와 정의를 위해 국왕 앞에서 결투 재판을 요청합니다. 결투에서 패배하면 곧 사형이며, 마르그리트 역시 거짓말로 남편을 죽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화형을 당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펼쳐집니다.

영화는 같은 사건을 세 번 반복해 보여줍니다. 첫 번째는 카루주의 시점, 두 번째는 르 그리의 시점, 세 번째는 마르그리트의 시점입니다. 각 시점은 인물들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사회가 진실을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드러냅니다. 특히 마지막 마르그리트의 진술은 “진실”이라는 자막이 등장하며, 관객에게 정서적 진실과 사회적 구조의 부조리를 강하게 전달합니다. 결말에서는 장 드 카루주가 결투에서 승리하면서 마르그리트는 화형을 면하지만, 그 후에도 그녀의 삶은 쉽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단순한 승리보다는, 진실을 말한 여성이 감당해야 했던 사회적 대가를 묵직하게 그려냅니다.

역사적 배경

‘더 라스트 듀얼’은 1386년 실제로 프랑스에서 벌어진 ‘장 드 카루주 대 자크 르 그리’ 간의 마지막 공식 결투 재판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당대 프랑스 사회의 성 윤리, 귀족 간 정치, 여성의 지위, 그리고 중세 법률 체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장 드 카루주는 실존 인물로, 프랑스의 노르망디 출신 기사이며, 자크 르 그리는 그의 지역 동료이자 라이벌로 활동한 인물이었습니다.

결투 재판이란 중세 유럽에서 사용되던 법적 절차 중 하나로, 신이 정의로운 자에게 승리를 준다는 믿음에 기반해 두 사람의 싸움으로 진위를 가리는 제도였습니다. 이 방식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이 사건은 프랑스에서 공적으로 허용된 마지막 결투 재판으로 기록됩니다. 마르그리트 드 티부빌은 장 드 카루주의 아내로, 그녀의 고발은 당시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중세 시대에 여성의 성폭행 피해 주장은 받아들여지기 어려웠고,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 구조적 부조리가 만연했습니다.

이 사건은 ‘에릭 재거(Eric Jager)’가 쓴 논픽션 저서 『The Last Duel: A True Story of Crime, Scandal, and Trial by Combat in Medieval France』를 통해 재조명되었으며, 영화는 이 책을 기반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장 드 카루주가 결투에서 승리한 뒤, 그는 왕실로부터 포상도 받았지만, 정치적 입지는 제한적이었고, 마르그리트의 삶 역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 간의 갈등이 아닌, 중세 사회에서 ‘정의’와 ‘진실’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감상평

‘더 라스트 듀얼’은 리들리 스콧 감독 특유의 중세 재현 능력과 묵직한 메시지가 결합된 수작입니다. 일반적인 중세 서사극이 전쟁과 권력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영화는 진실의 다면성과 여성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우며 차별화를 꾀합니다. 특히 세 인물의 시점에서 반복되는 플래시백은 관객에게 '기억의 왜곡', '진실의 상대성'이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반복 속에 담긴 미묘한 차이들은 캐릭터의 심리를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극찬할 만합니다. 조디 커머는 마르그리트 역을 통해 당시 여성의 억압된 현실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강인하면서도 복합적인 감정을 완벽히 소화합니다. 맷 데이먼과 아담 드라이버 역시 각자의 시선에서 비극적 남성상을 보여주며, 특히 드라이버는 매혹적이지만 위험한 인물을 입체적으로 구현합니다. 세 배우의 호흡은 영화의 몰입도를 크게 끌어올립니다.

연출 측면에서 리들리 스콧은 과감한 구성을 택하면서도 중세의 풍경, 복식, 건축 등 시대적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결투 장면의 리얼리즘은 장대한 음악과 어우러져 시청각적으로 압도적이며, 잔인하면서도 고결한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특히 결투 장면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물리적 충돌 너머의 도덕적 심판이라는 상징성을 갖습니다.

결국 ‘더 라스트 듀얼’은 단지 과거의 사건을 재현한 영화가 아닙니다. ‘여성의 목소리가 어떻게 억압당했는가’, ‘권력이 어떻게 진실을 왜곡하는가’, 그리고 ‘누가 진실을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오늘날에도 유효하게 제기합니다. 고전적인 형식을 따르면서도 현대적 메시지를 전하는 이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당시의 비극을 단순한 역사로 넘기지 않도록 하는 강력한 힘을 지닌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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