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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왕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사진

    줄거리

    ‘더 페이보릿’은 18세기 초 영국을 배경으로, 병약하고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앤 여왕과 그녀의 최측근인 사라 처칠, 그리고 궁에 새롭게 들어온 하녀 애비게일 힐 사이에서 벌어지는 복잡하고 치열한 권력 다툼을 다룹니다. 영화는 당시 영국이 프랑스와 전쟁 중이며, 내부적으로는 휘그당과 토리당의 경쟁이 극심한 상황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시작됩니다. 중심인물인 앤 여왕은 육체적 고통과 정서적 불안정 속에서 국정을 사라 처칠에게 위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라는 여왕의 절대적 신뢰를 바탕으로 정치와 군사 모두를 장악하고, 실질적인 권력자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몰락한 귀족 가문의 딸 애비게일이 궁정에 하녀로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전개됩니다. 처음에는 낮은 신분으로 하찮게 여겨졌던 애비게일은 특유의 영리함과 관찰력을 바탕으로 사라의 허점을 파악하고, 앤 여왕에게 접근합니다. 그녀는 여왕의 통증을 완화해 주는 약초 요법으로 신뢰를 얻기 시작하고, 점점 더 개인적인 관계로 발전하며 여왕의 애정을 사로잡게 됩니다. 여왕은 사라의 직설적이고 냉정한 태도에 지쳐가던 중, 애비게일의 부드럽고 교묘한 아첨에 매료되어 점차 그녀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애비게일은 자신에게 점점 쏠리는 여왕의 관심을 이용해 사회적 지위를 회복하려 합니다. 귀족 남성과의 결혼을 성사시키고, 다시 상류 사회로 돌아가려는 그녀의 계획은 치밀하게 진행됩니다. 사라는 이를 눈치채고 애비게일을 경계하지만, 여왕의 마음은 이미 애비게일 쪽으로 기울어 있었습니다. 사라는 여왕의 총애를 되찾기 위해 감정적으로 호소하고, 직접적인 압박도 시도하지만, 애비게일은 오히려 사라가 여왕을 조종해 왔다는 증거들을 이용해 그녀를 궁정 밖으로 내쫓는 데 성공합니다.

    결국 애비게일은 여왕 곁의 ‘더 페이보릿(총애받는 자)’ 자리를 차지하지만, 그녀가 꿈꾸던 이상적인 삶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권력의 자리는 외롭고, 여왕의 애정은 점점 냉담해집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앤 여왕은 애비게일에게 정신적·육체적으로 의존하지만 동시에 그녀를 전혀 신뢰하지 않으며, 애비게일 역시 권력을 손에 넣었지만 진정한 행복이나 자유는 얻지 못한 채 무의미한 반복 속에 갇혀버립니다. 영화는 승자 없는 게임, 사랑 없는 권력의 쓸쓸함을 처절하게 그리며 마무리됩니다.

    역사적 배경

    영화 ‘더 페이보릿(The Favourite)’은 1702년부터 1714년까지 영국을 통치한 앤 여왕과 그녀의 가까운 친구였던 사라 처칠, 그리고 실제로 궁정에 있었던 애비게일 힐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앤 여왕은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군주로, 당시 영국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과 내각제 전환이라는 정치적 전환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앤 여왕은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고, 실제로 임신을 17번이나 했으나 모두 유산하거나 아이들이 어려서 사망하여 후계자를 두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정치적 기반이 약했던 앤은 사라 말버러 같은 측근에 크게 의존했고, 이는 자연스레 궁정 내 권력다툼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사라와 애비게일은 역사적으로도 앤 여왕과의 특별한 관계로 인해 권력을 쥐락펴락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영화는 이들의 관계를 극적으로 각색하였지만, 앤 여왕의 개인적 불안정성, 여성을 중심으로 한 정치의 흐름, 그리고 감정과 권력의 교차지점 등은 실제 역사에 기초한 사실입니다. 이처럼 영화는 단순한 시대극을 넘어 당시 영국의 정치와 궁정 문화를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으며, 관객들에게 역사에 대한 흥미까지 자극합니다.

    감상평

    ‘더 페이보릿(The Favourite)’은 단지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시대극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인간의 본성과 권력의 민낯, 특히 여성 중심의 권력관계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기존 정치영화의 문법을 과감히 벗어납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그 자체로 감탄을 자아내며, 특히 올리비아 콜먼은 앤 여왕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정도로 섬세하면서도 파격적인 연기를 보여줍니다. 라첼 와이즈와 엠마 스톤 역시 각기 다른 욕망과 상처를 지닌 여성상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며, 이 삼각 구도는 관객의 감정을 끝없이 요동치게 만듭니다.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연출은 기묘하면서도 독창적입니다. 어안렌즈와 비스듬한 프레임, 강렬한 색채 조명은 궁정이라는 폐쇄된 공간의 권력 게임을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아름답게 포착합니다. 한편, 이 영화는 남성 캐릭터를 최소화하며, 여성 인물의 욕망과 심리를 깊이 있게 탐구한 점에서 페미니즘 영화로도 해석됩니다. 그러나 단순한 이분법이나 교훈을 제시하지 않고, 인간 본성의 복잡함을 담담히 보여주는 점이 이 영화의 진정한 미덕입니다.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웃기며, 결국에는 씁쓸하게 다가오는 이 작품은 ‘관계’와 ‘권력’의 본질에 대한 깊은 질문을 남깁니다.

    ‘더 페이보릿(The Favourite)’은 단순한 시대극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욕망과 권력의 변질을 정교하게 풀어낸 심리극입니다. 역사와 허구를 절묘하게 섞어낸 이 작품은 예술적 완성도는 물론, 현대 관객에게도 깊은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만약 권력, 심리,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찾고 있다면, 이 영화는 반드시 봐야 할 명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