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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영화 "스펜서(Spencer)"는 2021년 개봉한 전기 드라마로, 찰스 왕세자의 아내이자 웨일스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 스펜서의 내면세계를 탐구한 작품이다. 감독 파블로 라라인은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하되, 픽션을 가미하여 다이애나가 왕실에서 겪은 심리적 압박과 고립감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영화는 1991년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다이애나가 샌드링엄 저택에서 영국 왕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3일간의 시간을 집중 조명한다. 그녀는 이 기간 동안 남편 찰스 왕세자와의 불화, 왕실의 엄격한 규율, 그리고 대중의 시선 속에서 갈등과 고통을 겪는다. 영화는 단순한 전기영화가 아니라, 다이애나가 처한 심리적 현실을 표현하는 심리 스릴러에 가깝다. 특히 식사 장면, 옷을 입는 의식, 시간마다 정해진 일과 등 왕실의 통제된 삶은 그녀에게 숨 막히는 감옥처럼 다가온다. 그녀는 점점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혼동하게 되고, 결국 정신적 해방을 향해 몸부림친다. 다이애나는 환각 속에서 앤 불린(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이 자신을 찾아오는 환영을 경험하며, 자신 또한 체제에 희생당한 여성임을 자각한다. 영화는 이 3일간의 짧은 시간 안에 그녀의 정체성 혼란, 모성애, 자아 회복을 농밀하게 그려낸다. 결국 다이애나는 왕실을 떠날 결심을 굳히며 두 아들과 함께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길을 택한다. 영화는 역사적 사건에 기반을 두되, 현실보다는 감정의 진실을 우선시한 예술적인 작품이다.
역사적 배경
다이애나 프랜시스 스펜서는 1961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1981년 찰스 왕세자와 결혼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들의 결혼은 "세기의 결혼"으로 불릴 만큼 화려했으나, 이면에는 많은 문제가 존재했다. 찰스 왕세자는 결혼 당시에도 카밀라 파커 볼스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다이애나는 결혼 생활 내내 외로움과 불안을 겪었다. 다이애나는 왕실의 엄격한 규범과 전통에 끊임없이 부딪혔으며, 대중의 시선 속에서 삶을 살아가야 하는 부담감을 크게 느꼈다. 그녀는 왕실의 역할과 개인의 정체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했고, 이는 우울증, 섭식 장애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영화 "스펜서"는 1991년 크리스마스를 중심으로 하지만, 그 해는 다이애나와 찰스의 관계가 거의 파탄에 이른 시기로, 이듬해인 1992년에는 공식 별거가 발표되었고, 1996년에는 이혼이 확정된다. 영화 속 배경이 되는 샌드링엄 하우스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사유지로, 왕실 가족들이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장소다. 이곳은 겉으로 보기엔 화목한 왕실의 전통을 상징하지만, 다이애나에게는 감정적으로 고립된 장소로 그려진다. 또한 영화에 등장하는 앤 불린의 망령은 역사적으로 헨리 8세에게 버림받고 참수된 여성을 상징하며, 다이애나는 자신도 이와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는 자각에 빠진다. 이처럼 영화는 단순한 개인사를 넘어 영국 왕실 내부의 구조적 문제와 여성 억압,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조명하며 역사적 사실을 예술적으로 재해석한다.
감상평
"스펜서"는 전통적인 전기 영화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며, 사실보다 감정의 진실을 중심에 둔 예술적 접근이 돋보인다. 영화는 실제 사건을 재현하기보다는, 다이애나가 왕실 속에서 느꼈을 법한 감정과 고립, 공포, 해방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특히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다이애나 역을 맡아 생애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녀는 겉으로는 우아하지만 내면에는 상처와 분노, 불안을 간직한 다이애나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전달한다. 영화는 과장된 드라마보다는 미묘한 시선, 움직임, 침묵 속에서 긴장과 감정을 끌어낸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카메라 워크와 음악, 조명 등을 활용하여 마치 심리 스릴러처럼 숨막히는 분위기를 연출하며, 다이애나의 감정 변화에 관객이 몰입할 수 있게 한다. 특히 폐쇄적인 공간과 절차적인 일상이 주는 긴장감은 공포 영화에 가까울 정도로 극적인 효과를 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이애나는 아이들과 함께 맥도널드에 들르며, 왕실의 엄격한 체제를 벗어나 평범한 삶으로 향하려는 그녀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장면은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며, 진정한 자유와 해방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스펜서"는 단순한 다큐멘터리적 전기가 아닌, 한 여성의 내면을 탐색하는 강렬한 심리극으로서, 관객에게 깊은 여운과 사색을 남기는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