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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헤어질 결심’은 형사 해준(박해일)이 산에서 벌어진 의문의 추락사 사건을 수사하면서,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와 얽히며 벌어지는 감정의 교차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 멜로 영화다. 해준은 형사로서 강한 책임감과 윤리의식을 가진 인물로, 평범하지만 안정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사건 수사 중 만난 서래는 그에게 기존의 질서와 도덕을 뒤흔드는 존재가 된다. 서래는 중국 출신의 간병인으로, 남편의 사망에도 침착하고 수상쩍은 태도를 보여 해준의 의심을 사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언행, 외로움, 모국에 대한 그리움 등은 해준의 이성과 감정을 동시에 흔든다.
해준은 서래를 감시하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게 되고, 그녀의 생활 속 외로움과 슬픔에 공감하게 된다. 그의 감정은 수사의 객관성과 중립성을 무너뜨리기 시작하고, 해준은 점차 수사보다 그녀에게 빠져들게 된다. 한편, 서래는 해준의 감정을 알고 있으면서도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 그녀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해준은 더욱 혼란에 빠지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명확히 다가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한 채 감정의 줄타기를 이어간다. 해준은 결국 그녀를 혐의에서 제외시키며 일종의 보호를 선택하게 되지만, 이후 또 다른 사건에서 서래와 다시 마주하게 되면서 더 깊은 감정과 갈등에 빠진다.
시간이 흐르며 해준은 수사를 통해 그녀가 처음 남편을 죽인 것이 사실임을 직감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과 형사로서의 양심 사이에서 극도의 갈등을 겪는다. 결국 그는 모든 사실을 파악하면서도 그녀를 고발하지 못하고, 이 감정에서 도망치듯 그녀를 떠난다. 하지만 서래는 해준을 포기하지 못하고, 다시 그 앞에 나타나 치명적인 방식으로 사랑을 증명하고자 한다. 영화는 이처럼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억제된 감정과 결정이 어떻게 파국으로 흘러가는지를 감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서래는 자의적으로 해준과의 ‘헤어짐’을 선택하며 바닷속으로 사라지고, 해준은 그녀의 존재가 남긴 흔적만을 안은 채 파도 위에 홀로 선다. 이 장면은 사랑과 죄책감, 집착과 해방의 아이러니를 시적으로 표현한 엔딩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역사적 배경
‘헤어질 결심’은 명확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진 않지만, 영화 속 주요 장면들이 벌어지는 공간과 인물 구성은 한국 사회의 특정 시기와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주인공 해준은 부산에서 근무하는 형사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있으나 내면에는 공허함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이러한 설정은 현대 한국 사회에서 직업적 성공과 개인적 행복 사이의 괴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 다른 중심인물 서래는 중국 국적을 가진 여성으로, 한국 사회 내 외국인의 정체성과 소외감을 드러내는 캐릭터다. 그녀는 과거의 폭력적 관계와 불안정한 현재를 배경으로 등장하며, 한국 내 이주여성과 그에 대한 시선을 영화적으로 풀어낸다. 이러한 설정은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 및 타인종에 대한 인식, 그리고 타국에서의 생존 방식 등에 대한 함축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화 속 공간 또한 도시의 복잡함과 자연의 고요함이 교차하면서 인간의 내면 풍경을 반영하는 상징으로 작용하며, 단순한 배경을 넘어 영화의 분위기와 주제를 심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감상평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 특유의 세련된 연출과 정교한 미장센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단순한 스릴러나 멜로를 넘어서, 인간의 감정이라는 복잡한 주제를 시각적 언어로 풀어내는 방식은 국내외 비평가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특히 박해일과 탕웨이의 연기는 서로 다른 언어와 감정을 교차시키며, 언어 너머의 교감이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형사 해준은 원칙주의자로 보이지만, 점점 사건의 진실보다 서래에 대한 감정에 더 집중하게 되며, 관객 역시 해준의 시선을 따라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반면 서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눈빛과 미세한 표정 변화로 내면을 표현해 내며 독특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이 영화의 감상은 단순히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숨결과 시선, 공간의 상징성 등을 함께 읽는 데 있다. 특히 결말 부분의 상징적인 바닷속 장면은 사랑과 죄책감, 결심이라는 복합적 감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명장면으로 평가된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또 다른 정점을 찍은 수작으로, 한 편의 시처럼 정제된 영화다.